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제-가야 관계 (문단 편집) === 결말 === 554년, [[관산성 전투]]에서 백제-가야-왜 연합이 신라에 대패하자 [[소가야]]가 신라에 병합당하였고 555년, 가야가 신라의 부용국이 됨과 동시에 백제-가야는 더 이상 뚜렷한 외교를 하지 않게 된다. 이후 561년 [[아라가야]]가 562년 [[대가야]]가 신라에 차례로 멸망하면서 백제-가야 외교는 끝나게 된다. 하지만 616년에 백제 무왕이 신라에게 오래도록 준비한 대공세를 펼쳐 성왕 때보다도 더욱 옛 가야 일대를 깊이 지배하게 되면서, 옛 가야 일대에 백제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. 적어도 의자왕 당시 대야성 함락 직전 및 직후에는 옛 대가야 일대를 모조리 제패하고 있었을 정도. 김유신이 반격하여 대야성을 도로 빼앗지만 백제 멸망 이후에도 신라가 오늘날 대전 일대 및 전북 동부 일대를 직접 지배령으로 편재한 시점까지도 경상남도 서부 일대 백제가 지배한 영역은 되찾지 못했을 정도로, 백제의 옛 가야 일대 지배 강도는 강했다. 신라는 663년도에야 잔존 백제 군세를 옛 가야에서 일소하면서 가야 영역을 두고 벌인 백제와의 쟁패를 끝내게 된다. 그러나 결국 옛 가야 일대는 그로부터 거의 250여년만에 백제와 또 다시 인연을 맺게 된다. 918년도에 서라벌 내부에서 박씨 왕가의 부활에 반대한 김씨 족단 반란이 서라벌에서 일어나 신라 내부 상황이 어수선했던 시기에 견훤의 (후)백제군이 전광석화같이 진격하여 옛 대가야 일대를 모조리 제패한 것이다. 이후 옛 가야 일대는 간혹 고려가 유리할 때는 고려에게 귀부하기도 했지만, 이 시기 이후부터는 [[후백제]]의 판도 아래 있었던 기간이 상대적으로 더 길다. 후백제가 망하기 몇 년 전에는 충청도 일대와 나주가 고려에게 귀부했지만, 후백제가 경상도 일대에 대한 통제만은 여전히 놓고 있지 않아 멸망 직전까지도 옛 대가야 영역은 경북 서남부 일대와 함께 후백제의 판도에 속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